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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버닝 - 나의 20대(스포주의)

버닝.. 이창동..

그의 이름은 이창동

거꾸러하면 동창이

어쨌든 이창동의 버닝..

왠지 모르게 끌려서 꼭 보고 싶었다.

몇 년전의 나의 모습이 바로 버닝하는 모습과

Burned 된 모습이였기에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버닝 속 유아인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오버랩이 많이 되어서

슬프고.. 먹먹하고.. 감독의 의도가 확.. 들어왔다.

그래서 참 씁쓸한 영화였다.

버닝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문제는 바로 이 것이다.

판토마임을 하는 해미는 빚이 많다.

그녀는 얘기를 했다.

판토마임을 잘하는 방법은 이것이라고..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거야."

그 말처럼 영화는 실제와 허상 사이에서 묘한 줄다리기를 한다.

슈레딩거의 고양이 같이, 상자를 열기전에는 실제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는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지만, 점점 거칠어지며,

폭발한다.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는

너무 슬프다..

귤을 돈으로 치환해보자.

그러면, 해미의 잔혹한 현실이 나타난다.

돈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돈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거야.

실제 하는 세상을 가질 수 없으니, 실제가 없다는 것을 잊어 먹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결국, 해미가 꿈꾸는 이상향을 드러내면서, 비극을 상징한다.

결국, 돈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처럼

해미의 현실은 돈이 없고 굶주리고 빚이 많은 하루 살이 인생이다.

하지만, 해미는 그러한 현실을 잊고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어 한다.

(리틀 헝거- 굶주린자, 그레이트 헝거 - 배는 부르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굶주린 자)

해미는 그처럼,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고,

그 곳에서 돈이 엄청 많은 그레이트 헝거 벤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 오게 된다.

해미는 그레이트 헝거 벤의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프리카 이야기를 재미 있게 하며

리틀 헝거가 그레이트 헝거가 되는 춤을 그들 앞에서 춘다.

마치, 자신이 돈이 없는 걸 잊은 그레이트 헝거가 된 것처럼,

아니, 자신이 그레이트 헝거라고 믿는(?) 아니,

자신이 리틀 헝거라는 것을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레이트 헝거가 되는 춤을 춘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저,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듯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실제하는 해미가 그토록 바라던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실존하는 자들이다.

해미는 본인의 현실을 잊음으로서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어하지만,

실제 그레이트 헝거의 눈에서는 그저 하나의 광대가 될 뿐인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소중한 존재 종수가 있다.

해미는 종수가 자신의 초등학교 친구라고 말하며,
집 앞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집에는 고양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종수는 해미를 기억하지 못하며,
                    우물이 있었음도 기억하지 못하고,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해미의 말처럼 종수는 해미를 기억하고
                                       우물이 있었다고 믿으며 (해미의 부모님은 없다하고, 종수의                                                                          어머니는 있었다고 하는 실존하는                                                                          지 허상인지 알 수 없는 우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고양이 보일이를 벤의 집에서
                                        본 고양이에 대입하여 벤의 고양이를 보일이라고 믿는다.
                                        (보일이는 실존하는 지 허상인지 알 수 없다.)

즉, 리틀 헝거 종수는 하루살이로 살아가고 있고,
                            마치 우리들의 20대 처럼, 가진 것 없어서
                            먼가에 쫓기고 현재 상황을 바꿀 힘도 없고
                            하루 하루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바뀌지 않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20대 청춘을 대변한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상황들이 종수의 상황과 같다.
즉, 결국 나의 상황인 것이다.

 잘해 보려 노력해봐도 결국 제자리 걸음이고,
 나의 노력은 결국 월급으로 치환될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빤한 월급과 이대로 살아가서는 빤한 미래만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돈이 돈을 벌어 들이는 자본가 계급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

 그저 놀기만 해도 차곡 차곡 돈이 들어오는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세상의 부조리함.

 그것을 감당해 가는 종수이다.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 가는 종수에게 벤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뭘하는지 모르겠는 그는, 우는 해리에게 나는 슬픔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종수의 집에 찾아와서는 자신은 즐거움을 찾는 존재라고,

 심장의 베이스를 느끼면서 살아가고자 한다고 한다.

 그저 즐기는 일을 하는 그는 무려 포르쉐를 타고 다니며, 강남의 한복판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저 재밌는 일이 좋다며 2월에 한 번 씩 낡아 빠진 비닐하우스를 태우면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하는 그는 돈이 차고 넘쳐서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린 그레이트 헝거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분노는 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돈이 차곡 차곡 쌓이는 건물주,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가
 대한민국의 소비를 장악한 재벌들

 내가 돈을 벌면 결국 재벌의 덫에 빠져 그들이 만든 물건을 산다.
 결국 내가 번 돈은 다시금 재벌의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월급은 저축한다.
 저축한 돈은 은행이 처리하면서 나의 돈으로 그들의 배가 불러간다.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벤을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종수의 아버지 처럼, 분노 조절 장애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종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하루하루 충실히 살았고,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바뀌지 않는 모습,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벤처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데
 우월하게 살아가는 존재를 보면서 느끼는 알 수 없는 패배감과 좌절과 분노..

  종수가 가지려 하지만 너무나도 먼 "사랑하는 존재" 해미..
 너무나도 간단하게 해미와 사귀게 된 벤에게 해미는 그저 본인을 재미있게 해주는 존재일 뿐이다.

 그 괴리감에 화가 나지만, 어디다가 화를 풀어야 할 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은 2개월에 한 번씩 태워지길 기다리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말하며, 그러한 행위를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삶의 희열을 위해 본인의 심장의 베이스를 느끼라고 말한다.

 그러한 행위는 그저 사치로만 생각되는 하루살이 종수에게 벤의 그 말은 어떻게 와 닿을까..
 마치 평생 일해도 가질 수 없는 무슨 존재로 느껴지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 와중에 벤과 사귀던 해리가 소멸해 버린다.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종수가 너무도 원했던 해리가 사라지고, 벤은 그저 그의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벤이 했던 의미가 불분명한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종수의 분노의 감정 (버닝) 하는 감정과 벤이 했던 메타포 적인 묘한 이야기들 사이에서

 종수 나름의 결론을 지어 버리게끔 흘러간다.

 실제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결국은 그렇다.

 누구도 실제 진실을 그대로 말하진 않는다.

 어느정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냉철하게 Fact 라는 것에 닿을 수가 없다.

 진실은 언제나 희미하고 언론 등에서 만들어진 허상(이미지)는 너무 뚜렷하다.

 그러한 허상에 우리는 코카콜라와 같은 음료수를 구매하고
 회사원이라는 만들어진 허상 (현실은 노예) 를 추구 하며

 10대, 20대에 버닝하여 회사원이라는 존재가 되기를 갈구하지만
 막상 되어 본 회사원은 별 일 없다.

 그저 자본주의 시대의 노예 계급... 일 뿐..

 그렇게 실제 겪어 본 현실에 비추어 볼때, 종수의 일들 또한 매우 모호하지만

 본인의 경험에 따라 결정되어 버린다.

 슈레딩거의 고양이 처럼, 본인의 선택에 따라 실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진 실재는 종수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 현실에서 벤은 살인자가 된다.

 종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해미의 고양이(보일) 이를 있다고 믿고
 벤의 고양이가 보일이라고 믿게 된다.

 종수가 해미에게 준 시계를 가지고 있는 벤을 보고
 종수가 만났던 해미가 벤과 차를 타고 떠난 후 사라진 현실을 보고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믿는다.

 실재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허상을 믿게 되는 것이다.

 해미가 말했던 모호한 실재인지 아닌지 (사실, 종수의 머리속에서는 전혀 존재 하지 않았던) 우물이라는 존재를 실재한다고 믿게 되고,

 해미의 이야기를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다.
 (반대로, 해미의 어머니는 해미가 원래 거짓말을 잘 지어내는 아이라고 한다)

 이창동 감독은 의도적으로, 대부분의 삶이 그러하듯,
 실재하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메타포 적으로만 드러하는 현실 세계처럼
 영화를 그렇게 만들었다.

 실재하는 본질은 그 사람만이 안다 (?)
 마치, 불합격 시키는 회사에서 지원자에게 너무 나도 뛰어난 지원자였지만
 부득이하게 불합격 시켰다며, 건승을 빈다는 메세지 처럼..
 그렇게, 눈에 보이는 모습,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진실의 모호한 경계처럼
 그렇게 영화는 흘러가고,

 그러한 불분명한 안개 속에서 본인이 택한 선택에 따라 현실이 변해가고
 그러한 선택에 따라 실재하게 되듯이
 (불합격 시킨 회사의 지원자가 뛰어난 역량을 가졌다고 하는 말을
  믿는 다면 뛰어난 역량을 가진 지원자이고,
  거짓말이라고 믿는 다면 본인이 덜 떠러진 놈이 되듯이..)

 그렇게 실재라는 것은 본인 마음의 선택에 따라 구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종수는 결국 종수의 선택에 따라 벤은 살인자가 되고 죽음을 당하게 된다.
 (감독만이 알고 있을 벤이 살인자 인지 아닌지 - 혹은 감독 조차도 답을 정해 놓지 않아 알 수 없는)

 종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

 실존하지 않지만 실존하는 차별, 불합리, 열등감 등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마치, 한 사람의 성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통해 성격을 알아 가듯이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는 그리고 그때 그때 변해 가는 성격 처럼 애매 모호한 영화이면서
내가 겪은 일들이 버닝의 종수가 겪은 일들과 비슷하여 너무나도 착잡하고, 쓸쓸하며,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런 저런 차별, 사회의 부조리, 등등)

 그리고 결국 종수처럼 폭발해서 실제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 그 것은 결국 개인의 잘못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 시스템에 의한 부조리함은, 결국 벤의 모습처럼
 그는 의도하지 않았고, 그저 향유할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모습 자체가
 그 시스템 자체가 부조리해서 뒤엎어야 되는 것처럼..
 하지만, 뒤엎어 버리게 되면 개인의 잘못이 되어 시스템은 그대로 이고,
 시스템을 전복 시키려한 개인만 쓰레기가 되어 매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참으로.... 내가 생각하는 리뷰가 감독의 의도인지 알 바 없으나,
 내가 세상 살며 느낀 감정들을 잘 표현해 놓아서,
 참으로.. 기분이 묘하고 이상하고 더러우면서, 계속해서 생각 나고야 마는 것이다.

 참... 으로 묘하고, 벤이 말한 "메타포" 가 머리 속에서 계속 맴맴 도는 것이다.

 결국은 은유로 표현하는 메타포 라는 것은 실재하면서도 실재 하지 않는 듯
 그 묘한 경계에서 향유하는 것으로,
 슈레딩거의 고양이처럼, 선택에 의해 실존하게 되는 것이,
 결국에 우리는 실제 FACT ,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인 FACT란 것은
 마치 눈 앞에서 사라지는 신기루 처럼 절대 잡을 수 없고,
 본인의 마음이 선택한 허상에 의해 실재가 구현 되는 것이라는 것..
 참으로 묘한 영화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이 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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